무소유는 난초를 향한 집착의 모습을 통해 세속적인 가치를 초월하고자 하는 종교인의 태도를 보여주는 수필이다. 수필은 글쓴이가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느끼고 작성한 글이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나 의미, 깨달음을 파악하며 읽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여 반성하거나 다른 생각을 정리하면 좋다.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에 대한 깨달음 무소유 줄거리
법정스님은 3년 전 거처를 다래헌으로 옮겼을 때 어떤 스님한테 난초 두 분을 선물 받았다. 스님은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를 정성껏 돌봤다. 난초에 관한 책을 읽고 비료까지 구해왔다. 여름엔 서늘한 그늘로 옮겨주고 겨울엔 실내로 데려왔다.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좋아했다. 스님의 삶은 난초를 소유하면서 구속되었다.
어느 날 스님은 운허노사(항일투사 종교인)를 만나러 가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햇볕에 반해 소유(난초)에 대한 집착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햇볕 아래 두고 온 난초가 생각났다. 아름다웠던 햇볕이 원망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난초가 걱정되어 서둘러 다래헌으로 돌아왔다. 스님은 축 쳐진 난초를 보며 집착이 괴로운 것임을 깨달았다.
스님은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초 때문에 불교도의 마음가짐(무소유)을 수행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찾아오자 난초를 줘버렸다. 비로소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홀가분했다. 이때부터 스님은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를 깨달았다. 물건 때문에 생기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으며 소유는 끝이없다. 소유욕은 이익이 클수록 소유하려는 욕심도 커진다.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바뀌면 전쟁도 없을 것이다. 소유하려는 욕심은 현실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언젠가 빈손(공수래공수거)으로 돌아갈 것이다.
죽음은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니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세상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사람은 집착과 소유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집착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역설적 표현으로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소유욕과 집착, 많이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불평이 결국 자기 자신을 더 괴롭게 만든다는 가르침이다. 혹시 불필요한 집착에 얽매여 괜한 트집을 잡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아닌지 아닌지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