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이 없는 창고에서 매일 같은 일을 하는 두 남자가 있다. 좁고 어두운 창고 안에서 사는 두 남자 자앙과 기임은 매일 같은 시각 찾아오는 트럭에서 보관할 상자를 내려놓고 출고할 상자들을 싣는다. 자앙은 성실하고 꼼꼼하며 묵묵히 자신을 일을 수행하는 원리원칙주의자이다. 반면 기임은 게으르고 하는 일마다 요령을 부리며 쾌락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성실성보다는 자기 배짱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다. 이런 성격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한다. 허세만 부리는 전형적인 사기꾼 기질을 어떤 회사가 받아주겠는가?
그들에게 창고란 분업화되고 획일화된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들은 기계의 부품처럼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의미없이 하루를 마감한다. 그들은 산업 사회에서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은 현대인이며 창고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사회였다. 이 소설은 소외된 사회의 무기력한 현대인을 보여준다.
자앙에게 창고란 현실에 순응하며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곳이다. 창고 밖은 단지 새로운 또다른 창고 일뿐 지금의 창고와 다른 바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살 뿐이다.
기임에게 창고란 탈출하고 싶은 공간이다. 기계 부품처럼 반복되는 일상때문에 회의와 불만이 가득한 곳, 욕망을 억누르는 곳, 무기력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창고 밖을 꿈꾼다. 창고 밖은 다를 줄 알았다. 문제는 창고가 아니라 기임의 성실성이었다.
기임은 트럭 운전사의 딸 다링을 만난다. 다링 또한 기임처럼 놀고 먹는 것을 즐기며 쾌락을 좇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근처 모든 창고지기와 사귈 만큼 유명했다. 기임은 다링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고 술을 마신다. 기임은 다링의 부축을 받으며 창고로 돌아온다. 다링은 보통 창고지기와 다른 분위기인 자앙을 유혹해 보지만 자앙은 넘어오지 않는다.
자앙은 기임에게 북어로 해장국을 만들어 주며 잔소리를 퍼붓는다. 창고지기 생활에 염증을 느낀 기임은 재미를 위해 다링의 말처럼 일부러 상자 하나를 바꿔 트럭에 싣는다. 이 사실을 안 자앙은 상자주인에게 사과 편지를 쓰지만 기임은 잘못을 깨우치지 못한다.
트럭운전사는 다링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눈치채고 기임과 결혼시킬 계획을 세운다. 자앙은 트럭 운전사에게 사과 편지를 전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운전사는 우리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부품이라며 책임같은 건 지지 않는다고 편지를 찢어버린다. 운전사는 우리는 이름도 없는 그저 현대 사회의 익명성처럼 이름도 모르는 존재이며 가치가 없는 조직의 부속품일 뿐이라며 기임을 꼬드겨 창고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떠나는 기임은 북어대가리만 자앙에게 남긴채 창고를 떠난다. 사실 성실성 제로인 기임에게 창고 안의 세계나 창고 밖의 세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창고 밖 세상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기임은 그곳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자기 배짱만 믿고 무모하게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건방진 생각은 그저 헛된 희망일 뿐이었다.
홀로 남겨진 자앙은 몸뚱이는 없고 머리만 덜렁 남은 북어대가리를 보며 혼란에 빠진다. 분업화, 획일화된 사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가치관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채 허무함을 느낀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며 소설은 끝난다. 획일화된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행복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