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크리스트교의 분열로 완전히 진짜로 동서로 나뉜다. 로마는 정상이 아닌 왕들(3C)과 잔인하고 퇴폐적인 문화 때문에 나라정세가 위태로웠다. 그리고 로마 근처의 게르만족의 이동과 동쪽 훈족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해진다.
불안한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크리스트교를 공식화하는 밀라노 칙령(313)을 선포한단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크리스트교를 국교화(392) 선언하고, 자녀들(395)에게 동로마와 서로마를 물려줌으로써 로마는 둘로 나뉘어 진다.
서쪽 로마는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프랑크 왕국이 세워지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476). 서유럽은 재정분리로 황제와 교황(교회의 황제)이 있었고, 동쪽 로마(비잔티움제국)는 교황은 없지만 황제가 교황 역까지 하는 황제중심이었다.
비잔티움제국(동로마)의 레오3세는 서로마가 만든 성상(예수상, 마리아상)을 숭배(우상숭배)로 간주하며 금지령(726)을 발표한다. 서로마는 게르만족들을 전도하기 위해 만들었을 뿐이라며 숭배가 아니라고 대립한다.
이 사건으로 교황은 게르만족의 카롤루스 대제에게 서로마의 왕관을 수여(800)한다. 이로써 서로마는 가톨릭으로, 동로마는 그리스 정통 교회(정교회)로 나눠지면서 로마는 정말로 분열된다.
서유럽은 성직자들의 약탈과 탐욕으로 교회가 타락하고 클뤼니 수도원 중심으로 교회 개혁운동(10세기)이 일어난다. 교황청은 교회와 국정을 분리하며 교황령(1075)을 발표한다. 전에는 황제와 귀족이 성직자를 임명하였지만 앞으로는 교황이 성직자 임명권을 갖겠다고 선언하고 추기경을 선출한다.
이때는 장원(봉건) 시대로 영주의 성 안에 교회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황제(신성 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는 교황(그레고리우스 7세)이 권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립하지만 영주들은 교황의 편에 선다. 왕권추락!
한편, 동로마(비잔티움제국)는 셀주크 튀르크(이슬람세력)의 위협을 받는다. 셀주크 튀르크가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1077)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잔티움 제국 황제가 로마교황(우르바누스 2세)에게 도움을 청한다.
교황은 성직자들을 동원해 전쟁을 선포한다.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군주, 기사, 이탈리아 상인, 농민들이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 이들은 각자의 이익(장사)과 탐욕(약탈)을 채우기 위해 200년간 전쟁을 벌인다.
비잔티움제국은 재정이 바닥나고, 국력이 약해지더니 오스만제국 (1299~1922)에 의해 멸망한다(1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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