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배경 - 식민지 쟁탈전
독일은 비스마르크(프로이센 수상 1862~1890)의 철혈 정책 추진으로 1871년 통일한 후,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다. 빌헬름 황제(1888)는 독일의 3B정책(베를린, 비잔티움, 바그다드)으로 영토 확장을 위한 팽창정책을 추진한다.
영국은 3C정책(카이로, 케이프타운, 캘커타: 종단정책)으로 삼각형 구조의 식민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독일의 3B정책 지역과 대립하게 된다.
한편, 독일은 프랑스와 전쟁 후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와 3국 동맹을 맺는다. 프랑스(1894)와 영국(1907)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3국 협상)와 손을 잡는다.
전쟁의 원인 -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의 사라예보
사라예보의 옆나라 세르비아에는 슬라비아족(러시아인)이 살고 있었다. 전부터 사라예보는 러시아 땅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게르만족을 견제하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는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 세르비아계 청년의 총에 맞아 죽는다(1914).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게 보복 전쟁을 선포한다. 범세르비아주의 였던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한테 선전포고한다.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은 러시아에게, 러시아의 협상국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한테 선전포고한다. 이탈리아, 미국, 일본이 협상국(연합국)에 붙으며 세계대전으로 커진다.
제1차 세계대전 과정
독일은 프랑스를 침략한다. 프랑스의 참호전(땅을 깊게 파고 대치하는 전투)으로 전쟁은 장기화된다. 이때를 노리고 쳐들어 오는 러시아를 독일은 격퇴한다.
이탈리아는 영국에서 땅을 주겠다는 협상을 받아들이고 연합군 편(1915)에 선다. 영국은 독일의 해상을 봉쇄한다. 독일은 잠수함 작전으로 공격한다. 잠수함이 영국 호화 여객선을 격침하면서 미국인 128명이 사망한다(루시타니아호 침몰사건 1915). 그 뒤로도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여객선이 공격당한다.
중립을 지키며 무기를 판매하던 미국은 1차 대전에 참전(1917)하면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다.
당시, 러시아는 혁명이 터지며 왕권이 무너진다. 레닌 중심의 볼셰비키 세력이 임시 정부를 타도하고,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소비에트)을 수립한다. 러시아 11월혁명(1917)
러시아는 독일과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중단하며 연합국을 이탈한다. 독일의 동맹국(불가리아, 오스트리아, 오스만제국)은 항복을 선언한다.
세계대전 결과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 유럽일대가 초토화 되면서 국제 사회에서는 유럽 열강 세력이 약화된다. 대신 미국과 일본이 최강국으로 급부상한다.
파리 강화 회의를 통해 미국의 윌슨 14개조 평화안(민족 자결주의, 국제 평화 기구 창설)이 채택된다. 어떤 민족이든 민족의 결정을 스스로 정한다는 원칙으로 식민지가 독립되지만 패전국의 식민지만 해당되었다.
결국, 승전국이 이권을 갖는 셈. 독일과 승전국은 베르사유 조약(1919)을 맺는다. 독일령이었던 알자스로렌 지역이 프랑스로 돌아간다. 독일은 영토가 축소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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