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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생각

통일을 향한 민족주의 독일 역사정리

by 책보는좀비 2024. 5. 13.

독일의 통일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서로마는 멸망(476)한다. 게르만족 중 프랑크 족이 세운 나라가 프랑크 왕국이다.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는 가톨릭을 믿으며 메로빙거 왕조(481)를 세운다.
 
행정일을 맡아하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최고 권력자가 되어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다. 궁재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는 로마 교황을 위협하던 롬바르트 왕국을 물리치고 교황의 힘을 얻어 카롤링거 왕조(751~987)를 세운다. 피핀의 아들 카롤루스는 서로마의 영토와 문화 회복, 크리스트교의 부흥에 힘쓴다. 교황(레오 3세)이 옛 서로마의 왕관을 수여(800)한다.
 
카롤루스의 아들 루도비쿠스 1세가 죽으면서 프랑크 왕국은 분열된다. 베르됭 조약과 메르센 조약에 의해 첫째 왕자는 중프랑크(이탈리아), 둘째 왕자는 서프랑크(프랑스), 셋째 왕자는 동프랑크(독일)로 나눠 먹으며 각 나라의 영토적 기초가 되었다.
 
동프랑크 왕국은 카롤링거 왕조의 후손이 끊기며 작센왕조의 독일제국이 세워진다. 962년 오토 1세가 즉위하면서 옛 로마의 명성을 찾고자 신성로마제국이란 이름을 사용한다.

1517년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설하기 위해 거금이 필요했다. 그는 독일에 죄를 사면해 준다는 면죄부를 판매한다. 1521년 루터는 성경으로 토대로 95개조 반박문을 선언한다. 칼뱅은 근면, 절약, 경제적 이윤 추구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구교(가톨릭)와 신교로 나누어진다. 

구교 가톨릭 신도였던 페르디난트 2세가 즉위하면서 신교도를 탄압하자 보헤미아 의회가 신교(칼뱅파) 신도인 프리드리히 5세를 왕좌에 앉힌다. 구교와 신교는 1618년 전쟁을 선포한다. 이를 독일 30년 전쟁이라 한다. 국제전으로 큰 전쟁이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교를 인정하는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은 끝이 난다.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민족주의 운동

30년 전쟁은 국제전으로 커지면서 신성로마제국은 약해지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만 남는다. 프로이센(독일)은 게르만족들(39개국)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관세동맹(1834)을 맺고 경제적 통일을 먼저 이룬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왕위계승 문제와 광물이 풍부한 슐레지엔 지방을 놓고 또다시 전쟁(7년 전쟁)을 치른다. 오스트리아가 승리하여 국가통일에서 멀어지자 비스마르크가 나타나 철혈정책(군비와 전쟁)을 펼친다.
 
오스트리아(1866)를 격파하고 북독일 연방을 결성한다. 프랑스(1870)를 격파하고 남독일 국가를 통일한다. 독일제국(1871) 수립되면서 빌헬름 1세가 황제로 즉위하고 비스마르크는 독일제국의 첫 번째 수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