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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생각

프랑스 7월 혁명과 2월 혁명의 영향

by 책보는좀비 2024. 5. 14.

빈체제에서 프랑스 7월 혁명으로 입헌군주제

나폴레옹은 1814년 황제에서 물러나고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업적은 대단했다. 그의 자유주의 사상은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유럽의 왕들은 두려웠다.

 

유럽은 자유주의를 외치며 신분제 타파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다. 시대의 트렌드를 무시하는 한 인간이 있었으니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 그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비엔나)으로 각국의 왕들을 불러 모은다.

 

각국의 왕들은 빈에서 모여 회의를 한다. 프랑스 시민 혁명 전의 강력한 왕권시대로 돌아가자고 동맹(4국 동맹 :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을 맺는다. 이로써 빈체제가 성립(1815~1848)된다.

 

프랑스는 왕정 복구를 계획한다. 프랑스는 루이 18세를 지나 샤를 10세가 즉위한다. 샤를 10세(1824~1830)는 복수정치를 펼친다. 왕권 강화를 위한 전제정치(왕맘대로)를 펼친다. 프랑스 시민들(부르주아)은 다시한번 7월 혁명(1830)을 일으킨다.

2월 혁명으로 공화정 수립 - 빈체제 붕괴

왕은 도망친다. 시민들은 자유를 인정하고 정치를 시민에게 맡기는 왕(입헌군주제) 루이 필리프을 세운다. 프랑스는 혁명의 시대를 거치고 있었다. 중소 시민층, 노동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도 정치 참여권(선거권)을 요구하며 2월 혁명(1848)이 일어난다.

 

프랑스 마지막 왕 루이 필리프 추방시키고, 입헌군주제를 무너트리고, 공화정이(제 2 공화국)이 수립된다. 나폴레옹 3세가 대통령으로 즉위한다. 프랑스의 자유주의는 유럽전 지역으로 확산된다.

 

오스트리아 3월 혁명이 일어나고 메테르니히를 추방시키며 빈 체제가 붕괴된다. 영국은 의회를 중심으로 자유주의가 정착되면서 차티스트운동(선거법 개정, 선거에 대한 공정성 요구)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