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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사씨남정기의 숨은 이야기 - 파란만장한 인현왕후의 삶

by 책보는좀비 2023. 10. 6.

곡절 많은 삶을 살았던 인현왕후 줄거리 

인현왕후는 숙종임금의 두 번째 부인이다. 왕후의 아버지는 병조판서 민유중이고, 외할아버지는 영의정 송준길이다. 왕후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매사 침착하고 다정하였다. 

 

1680년 겨울, 숙종 임금의 첫번째 왕후인 인경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대왕대비(인조의 두 번째 부인인 장렬왕후)는 새 왕후로 병조판서의 딸을 선택한다. 

 

숙종 임금 21살, 왕후 15살에 혼인을 하게 된다. 백성과 신하들은 왕후의 품위에 경의를 표하며 존경하고 따랐다. 시간이 흘러 왕대비의 삼년상을 치른 후 궁인 장씨가 후궁으로 들어왔다. 장 씨는 눈치가 빠르고 잔꾀가 많아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숙종 30살이 가깝도록 왕자가 태어나지 않자 왕후는 후궁을 뽑아 후손을 낳기를 바랐다. 그래서 숙의 김씨를 후궁으로 뽑았고 왕후는 숙의를 어진 마음으로 대했다. 

1688년 8월 대왕대비가 돌아가셨다. 그 해 10월에 장희빈이 아들을 낳았다. 장희빈은 왕자를 낳은 기세로 중전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왕후를 헐뜯으며 궁녀들을 시켜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숙종은 장희빈의 교태에 빠져 옮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왕후를 모질게 대했다. 

 

1689년 4월 왕후의 생일날, 숙종은 왕후의 폐위를 명하였다. 명령을 거두어달라고 요청한 좌승지 이이만은 관직에서 쫓겨나고, 신하 이만원은 귀양을 보내버린다. 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귀양 간 신하들이 40명이 넘었다. 박태보는 벼슬아치들에게 사발통문(호소문) 돌려 폐위에 대한 상소문 올렸다가 몽둥이로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한다. 

 

왕후는 폐위되었고, 궁을 떠나는 가마뒤를 많은 선비들과 백성들이 슬피 울며 따랐다. 왕후는 세명의 궁녀만 남기고 궁으로 돌려 보냈다. 큰아버지 좌의정 민정중을 비롯한 사촌형제 다섯 명은 모두 귀양 보내진다. 왕후는 집안의 문을 모두 걸어잠그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다. 

 

한편 숙종은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고, 희빈의 아비를 부원군으로, 오라비를 훈련대장으로 삼았다. 1690년 희빈이 낳은 아들이 왕세자가 되었다. 소원을 이룬 장희빈은 무례하고 건방지기 끝이 없었다. 그녀의 오라비 장희재는 재물을 긁어 모으며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이렇게 삼년이 지나 임금은 비로서 장희빈과 장희재의 간사함을 알게 되고, 왕후의 억울함을 깨닫는다. 1694년 4월 임금은 왕후의 죄 없음을 밝히고 별궁으로 모시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왕후는 자존심을 지키며 집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렇게 몇 번의 밀땅을 하고 숙종은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낸다. 왕후는 마지못해 입궁을 허락한다. 

 

왕후와 그녀의 가족들은 복위되고 장희빈은 세자를 걱정해 쫓아내지 않고 취선당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한다. 장씨는 성질이 더욱 포악해져 무당과 점쟁이들과 어울리며 신당을 꾸며 중전에게 저주를 건다. 

 

1700년 가을부터 왕후는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병이 깊어져 35살에 결국 돌아가신다. 복위한지 8년 만이었다. 

 

장희빈의 생일날, 장씨는 무당과 점쟁이들과 신나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데 숙종이 찾아온다. 비밀의 방인 해괴한 신당은 들통나고 화살자국이 많은 중전의 초상화를 발견하게 된다. 임금은 궁녀들을 심문하였고, 궁녀들의 자백과 증거물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장희빈은 사약을 세 그릇이나 입에 부어 넣고 사형되었다.

 

세월이 흘러 1720년 6월 숙종은 46년동안의 임금을 끝내고 62살에 돌아가셨다. 장희빈의 아들이 경종 임금이 된 지 4년 후, 37살까지 자식을 얻지 못하더니 병으로 일찍 죽게 된다. 숙빈 최 씨의 아들 영인군이 왕세제에 올라 영조임금이 된다. 

인현왕후의 일대기 - 역사적 중요한 기록

인현왕후전은 왕후의 탄생부터 숙종의 왕후가 되었다가 폐위되고, 다시 복위되어 죽기까지를 기록한 전기형식의 소설이다. 작가는 인현왕후를 모셨던 어느 궁녀라고 전해지나, 왕후의 가문이나 박태보와 관련된 사람이 썼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당시 궁중의 생활과 풍속을 알아보는데 중요한 기록이 되었으며, 선과 악의 대비를 이루어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을 준다. 

 

또한 숙종 때인 17세 후반, 당파싸움이 심각성을 알려준다. 인현왕후는 서인출신이며, 장희빈은 반대 세력인 남인과 가까웠다. 그래서 왕후의 폐위와 복위는 당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였다. 많은 서인들이 폐위에 반대했으며 귀양을 많이 가게 된 사실로 보아 당시 당파싸움이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인현왕후 전은 궁중의 문화와 당시 정치적 문제인 남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을 엿볼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