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숙은 어리석을 치(痴), 아저씨 숙(叔)으로 어리석은 아저씨를 뜻한다. 소설은 일제 식민 통치에 순응하며 살아가려는 [나]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아저씨]를 보여준다.
아저씨는 대학(고학력)까지 나왔지만 사회주의 사상에 갇힌 무능력자이다. 심지어 그는 어질고 얌전한 아내를 놔두고 바람까지 피운다. 서술자 나는 이런 아저씨를 어리석고 한심하게 생각한다. 서술자는 주인공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과연 아저씨는 정말 어리석을까? 아니면 아저씨를 바라보는 서술자가 어리석을까? 서술자는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신뢰를 잃어간다. 아저씨는 억울한 시대의 무능력자이지만, 나는 기회를 노리고 친일 하는 이기주의자였다.
아저씨는 나의 태도와 가치관을 비난하며 반어적이고, 냉소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나는 아저씨가 어리석고 우둔하다고 비판하지만 오히려 독자는 나를 비난한다. 치숙은 반어적 표현이었다. 비판받아야 할 인물이 오히려 비판하는 입장을 보여줌으써 왜곡된 현실을 보여준다.
소설은 서술자가 주인공을 보며 자신의 미성숙함과 무지를 깨닫도록 만들지만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을 남기고 끝난다.
일제강점기 무능력자와 기회주의자를 비판하는 치숙 줄거리
일제 감정기일제강점기 서울, 서술자 나는 오촌 고모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한다. 아저씨(고모부)는 일제강점기 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 운동을 하였다. 사회주의자라 낙인찍히고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폐병으로 앓아누워 있다. 아저씨 대학교까지 나와서 전과자가 되고 지독히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폐인이 된 남편을 수발하는 마음씨 좋고 부지런한 아주머니를 안타깝게 본다. 나는 아저씨 부부를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의 종업원이다. 일본인 사장에게 인정받아 일본인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 곧 자립하여 일본에 가서 살고자 한다.
나는 생각이란게 없는 사람이었다. 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고, 독립해야 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저씨가 아닌 나인지 모르고 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나의 한심한 계획을 정면으로 비난한다. 아저씨는 내가 세상물정 모른다고 언쟁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험담한다.
나는 어저씨와 가치관과 목적이 달랐다. 나는 아저씨 같은 사람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저씨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난다. 나는 죽지 않는 아저씨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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